일상,단상

흑백요리사 2: 신데렐라의 유리구두인가, 그들만의 자본주의 파티인가?

coco0905 2025. 12. 15. 13:20

부제: 우리가 '공정한 경쟁'이라 믿고 싶은 서바이벌의 이면

  <마스터 셰프>의 아마추어 열정, <냉장고를 부탁해>의 스타 셰프 신드롬, 그리고 <삼시세끼>와 <윤식당>의 힐링 리얼리티까지. 대한민국 '쿡방(Cook-bang)'은 끊임없이 진화해왔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힐링도, 쿡방도 따분한 오후처럼 길고 나른하게 느껴질 때 즈음 넷플릭스의 <흑백요리사>가 등장했습니다.

계급장 떼고 오로지 '맛' 하나로 승부한다는 이 자극적인 서바이벌에 대중은 다시 열광했습니다. 그런데 시즌2 라인업과 언급되는 식당들을 정리하다 보니, 문득 서늘한 의문이 듭니다.

"이게 정말, 우리가 기대했던 '언더독'의 반란이 맞는건가?"

1. 우리가 기대한 판타지: '재야의 고수'

우리가 <흑백요리사>에 열광한 첫 번째 이유는 '공정함에 대한 갈증' 때문이었습니다.

유명세, 배경, 자본 다 떠나서 "내 요리가 더 맛있다"는 무명 셰프(흑수저)가 거장(백수저)을 꺾을 때의 카타르시스. 그것은 마치 흙수저도 실력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현대판 동화, 신데렐라의 유리구두를 보는 듯한 희망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2. 마주한 현실: 이미 완성된 '사업가'들의 리그

하지만 언급되고 있는 흑백요리사 시즌2의 예상 참가자나, 소위 '흑수저'라 불릴만한 셰프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고개가 갸웃해집니다. 신데렐라가 아니라 '귀족들의 연회'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강남의 테헤란로, 삼성역에서, 서촌의 고즈넉한 한옥에서 혹은 청담동에서..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곳들은 '가성비'로 배를 채우는 곳이 아닙니다. 비싼 임대료, 고급스러운 분위기, 그리고 커다란 접시 위에 그림처럼 놓인 적은 양의 음식. 전형적인 '성공한 파인 다이닝'의 문법을 따르는 곳이죠.

  • 이타닉가든, 라망시크레의 손종원 셰프: 이미 미쉐린 별을 받은, 엘리트 코스를 밟은 최정상급 셰프입니다.
  • 스와니예, 도우룸의 이준 셰프: 미쉐린 스타를 받은 컨템포러리 퀴진 '스와니예'와 생면 파스타로 유명한 '도우룸'을 이끌고 있습니다. 특히 스와니예는 매 시즌 새로운 에피소드로 메뉴를 바꾸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는 단순한 요리 실력을 넘어 거대한 자본과 기획력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작품'의 영역입니다.
  • 멘야미코, 당옥의 신동민 셰프: 이미 탄탄한 브랜딩과 다수의 매장을 보유한 오너 셰프입니다.
  • 동경밥상의 김태우 셰프: 전국적인 인지도를 가진 장어덮밥의 고수이자 성공한 사업가입니다.

이들은 '무명'이라기보다 대중 매체 노출이 적었을 뿐, 이미 요식업계에서는 성공한 자본가들이자 실력자들입니다.

이들이 방송에 나와서 얻는 것은 무엇일까요? '생존'이 아니라 '날개'입니다. 이미 잘 되는 식당에 넷플릭스라는 거대 확성기를 달아주는 격입니다. 결국 방송이 끝난 후, 예약 전쟁이 벌어지는 곳은 또다시 그들의 식당일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자본주의의 적나라한 단면을 봅니다. "성공한 자가 더 큰 성공을 가져가는 구조(마태 효과)." 과연 이것을 순수한 등용문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3. 그럼에도 우리가 열광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다면 이 모순적인 상황에서도 우리는 왜 <흑백요리사>를 기다리는 걸까요? 단순히 속고 있는 걸까요? 저는 대중이 이 '자본주의적 속성'을 알면서도 소비하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계급장'이 떼어지는 찰나의 순간에 대한 도파민 때문_ 아무리 콧대 높은 미쉐린 셰프도, 수십 개 프랜차이즈 대표도 이 안대 쓴 심사위원 앞에서는 평등하게 '평가'받습니다. 그들이 쌓아올린 자본과 명성이 '한 접시'의 맛 앞에서 무력해질 수 있다는 긴장감. 대중은 그 '권위의 해부'를 관찰하는 입장을 즐기는 것입니다.

둘째, '진짜일까?'를 검증하고 싶은 욕구입니다. "저 식당, 마케팅빨 아니야?" "저 셰프, 사업 수완만 좋은 거 아니야?" 우리는 화려한 인테리어와 자본 뒤에 숨겨진 그들의 '진짜 실력'을 확인하고 싶어 합니다. 흑수저가 이기면 희망을 보고, 백수저가 이기면 그들의 성공이 운이 아니었음을 비로소 납득하게 됩니다.

 

4. 맺음말: 현대판 콜로세움

<흑백요리사>는 착한 동화가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철저하게 실력을 계량하는 '현대판 콜로세움'입니다.

 '셰프의 요리'와 '의사의 진료비'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그 사이의 아이러니는 뭘까요? 우리가 대학 병원 특진 교수에게 비싼 진료비를 내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는 이유가 뭘까요? 그 짧은 진료 시간 뒤에는 그들이 젊은 날 갈아 넣은 시간과 노력, 수많은 임상 경험이라는 '보이지 않는 비용'이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하지만, 문제는 '맥락'입니다.이미 고생 끝에 낙이 온 사람들, 이미 '보상'을 받고 있는 그들이 이 방송에 나와서 얻어가는 것은 무엇일까요?

결국 더 많은 예약, 더 높은 명성, 더 공고해지는 그들만의 성벽입니다.그래서일까요. 화면 속 화려한 테크닉을 보며 감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묘한 박탈감을 느낍니다.마치 이미 금수저를 쥔 사람들이 "우리도 실력으로 검증받고 싶어"라며 흙수저들의 운동장에 들어와서, 가장 좋은 장비를 차고 뛰는 모습을 보는 기분이랄까요. 그래도 우리는 맛을 탐닉하겠지만...하지만 이번 시즌2를 볼 때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될 것 같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요리 대결이 아니라, 이미 완성된 권력들이 자신의 왕좌를 지키기 위해, 혹은 더 높이기 위해 벌이는 '그들만의 우아한 전쟁'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지한 채로 말이죠.

이 프로그램이 진정한 '등용문'이 되려면, 정말로 자본은 없지만 실력만 있는 숨겨진 원석들이 더 많이 조명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성공한 사업가들이라 해도, 그들이 피 튀기는 전쟁터에 뛰어들어 자신의 명예를 거는 모습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드라마임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흑백요리사 시즌2가 시작되기 직전, 저는 조금 더 냉소적인, 하지만 여전히 기대에 찬 눈으로 지켜보려 합니다. 이것은 신데렐라 스토리인가, 아니면 골리앗들의 2차전인가. 그 답은 접시 위에 있을 테니까요.

 

  • "여러분이 생각하는 진정한 '흑수저(언더독)'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 "이미 유명한 셰프의 경연 참여, '용기'일까요 아니면 '독식'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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